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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연봉과 가난한 성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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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222.♡.16.118)
댓글 0건 조회 9,291회 작성일 17-06-03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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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과 은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능력은 없어  


황규학(GUIHAG)


얼마 전 높은뜻숭의교회의 김동호 목사가 억대 연봉 논란으로 곤욕을 치룬 적이 있었다. 새로 개척을 한 지 얼마 안 되어 '온도계'라는 아이디를 가진 한 성도가 인터넷에 목회자 억대 연봉 문제 제기를 하면서 연봉 문제가 일파만파 번지게 되었다. 특히 김동호 목사는 생사를 건 교회 개혁의 선두 주자로 활동하면서, 기존의 교회를 나와 기득권을 벗어버리고 새로이 교회 개척을 했기 때문에 많은 성도들의 기대가 컸던 것이다. 이로 인해 김동호 목사는 연봉 적정선을 위해 공청회까지 열어 정면 돌파를 시도하기도 했다. 

대형교회 목회자들, 사례비 외에 판공비, 부수입 많아 

그러나 김동호 목사뿐  아니라 사실 한국의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연봉은 거의 억대에 가깝거나 억대 이상이 된다. 재정상에는 억대가 되지 않더라도, 판공비나 자녀 교육비, 연금, 주거비 등을 합산하여 고려하면 실제로 억대 연봉에 이르거나 이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대교회는 목회자의 실제 사례비는 낮추면서 그 이외에 판공비라든가 주거비를 높게 잡는다. 대교회는 판공비만 해도 1억 이상 된다. 또한 결혼이나 장례, 헌신예배, 부흥회, 심방, 설교집 저술 등을 거쳐 들어오는 부수입은 사례를 초월하여, 실제로 억대 연봉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다. 

부흥회를 자주 나가는 목회자들은 교회 사례비는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천문학적인 수입을 얻는다. 보통 개교회 부흥회 한 번 하면 교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200-300만 원 이상은 족히 사례금으로 챙겨간다. 매주 부흥회가 있는 부흥강사라면 한 달에 1,000만 원의 부수입을 버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조금 이름만 있어도 한 번 부흥회에 300만원 이상의 사례는 되는 것이다. 일부 부흥사들은 6:4, 7:3 정도의 헌금을 교회 측과 나누는 것을 계약하기도 한다. 

특히 대교회 목사들은 더욱 부흥회의 강사로 자주 초청되는 것을 고려할 때, 그들의 수입은 천문학적이다. 국가에 세금도 한 푼 안 낸다. 선진국은 체크 문화이기 때문에 수입을 속일 수가 없지만, 한국은 캐쉬(현금) 사회이기 때문에 수입의 정도가 체크되지를 않는다. 특히 종교의 영역은 치외법권 지대이다.

억대 연봉 목사들, 대부분 고급차 타고 자녀들은 해외 유학 

이외에도 대교회 목회자들은 항시 고급차를 타고 다닌다. 그것이 그들의 권위라고 생각한다. 특히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기도 하며, 국산차라도 그랜저나 오피루스, 포텐샤 등 고급 승용차를 타는 것이 관행화되어 있다. 그리고 억대 연봉 목회자의 자녀들은 대부분이 외국에서 유학을 한다. 그러면서 몰래 부자 세습을 준비시키기도 한다. 

요즈음 같아서는 한 달에 200만 원을 벌려면 노예에 버금가는 생활을 해야 한다. 식당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해도 기껏해야 돈 150만 원 정도 번다. 택시 기사는 하루 종일 운전하고 다녀도 한 달에 150만 원 정도 벌기도 힘들 정도라는 것이다. 직장인들은 해고 당하지 않기 위해, 자존심 상하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여성들은 성추행과 불이익을 당해도 쉬쉬하고 있는 상태이다.

우리나라 여성 교역자의 평균 임금은 70만 원이고, 부교역자의 평균 임금은 130-140만 원 정도이다(교단마다 조금씩 다름). 140만 원 정도를 사례로 받기 위해서는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죽도록 일을 해야 한다. 갖은 모욕은 다 당한다. 담임목사를 보좌하는 임시목사이기 때문에 불의를 보아도 못 본 척, 불의한 일을 요청해도 하는 시늉까지 내어야 하고, 담임목사가 해외라도 나가면 공항까지 마중나가야 하고, 교회에 오면 조폭들처럼 대문까지 마중 나가 일렬로 늘어서서 환송할 준비를 해야 한다. 여교역자들은 식당이나 심방을 가면 목사의 신발까지 챙기고 가지런히 해야 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겨우 돈 100만 원을 사례로 얻는 것이다. 그래도 억대 연봉자들은 이러한 약자들의 삶에 하등 관심도 없다.

어느날 토마스 아퀴나스가 교황을 찾아갔다. 교황은 아퀴나스에게 이제 교회는 금과 은이 풍성하다고 했다. 그러자 아퀴나스는 그러면 이제 "교회는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일어나 걸으라는 능력은 나타낼 수 없습니다"고 했다. 

청빈한 영성 시대는 지나고 성공 영성 시대 도래 

이제 가난한 목회자의 청빈한 영성의 시대는 지나가 버렸다. 부요한 목회자의 억대 연봉의 시대가 이른 것이다. 그것이 점점 성공 영성으로 자리잡아가는 것이다. 성공영성주의자들은 성경의 이야기보다는 세상의 재미있는 이야기에 더 관심을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이 흘러갈수록 성경과 관련한 설교 영역이 점점 좁아지기 때문에 억대 연봉자들의 메시지를 통하여 코메디나 에세이, 세상, 돈, 권력, 섹스 등의 이야기가 빈번하게 설교 단상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것이다. 성경 공부에도 야한 농담을 해야 은혜를 느끼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강남 대형교회의 일부 목회자들은 성경 공부 시간에 성적인 농담을 자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여집사와 권사들이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성서에 나오는 고난의 장, 마가복음은 점점 설교하기 힘들게 되고, 머리 둘 곳 없는 가난한 예수의 삶을 드러내주는 마태복음, 돈이 없어 로마교회에 예루살렘 구제비와 서바나 선교비 요청하는 사도 바울의 음성이 담긴 로마서,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자신의 쓸 것을 보냈다고 칭찬이 담겨있는 빌립보서,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일어나 걸으라"고 하는 사도행전 등은 억대 연봉자들이 점점 설교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억대 연봉을 받으면 그래도 양심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특히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천국은 저희 것이라"고 말한 누가복음을 설교하는 것은 그들에게 목회를 더욱 짜증나게 하는 것이다.

지금도 섬마을이나 가난한 농촌은 1,000만 원도 안 되는 연봉을 받고 목회하는 목회자가 부지기수이다. 허나 지방의 특정 지역의 몇 개 교회들은 장로들이 만나면 목회자 사례비 올려주기 경쟁을 한다고 한다. 목회자들은 좋을지 몰라도, 성도들은 200만 원을 벌기 위하여 악덕 주인이나 상관 밑에서 눈치 보아가면서 자존심 구겨가면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하고, 나이 50 이상 되어도 자식 교육시키기 위해서 식당 일이나 청소 일도 감수한다. 대학원을 나와도 환경미화원 시험에 붙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시대가 된 것이다. IMF 이후 성도들은 그만큼 인생의 야영장에서 전쟁의 삶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러한 고혈을 흘리면서 번 돈을 교회에다 헌금하는 것이다.

억대 연봉을 받는 목회자들이 이러한 삶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주일이 되면 그들의 삶도 이해하지 못한 채, 설교 단상에서 알량한 예수의 기적 이야기, 죽지 않는 하늘나라 이야기, 달콤한 축복 이야기, 바벨탑 끝까지 성장 이야기, 요셉의 국무총리 등극 이야기, 아브라함의 자식 축복 이야기, 링컨의 성공 이야기, 워너메이커의 백화점 이야기, 록펠러의 십일조 이야기, 이랜드 회사의 청부론 이야기, 어설픈 개혁 이야기, 습관적인 위안 이야기, 신비적인 재림 이야기, 천년왕국 이야기 등 감상적인 몇 마디 던져 놓고 "여러분들도 복을 많이 받아 그렇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하며 마이크를 내린다. 성공 신화 이야기를 해야 성도들이 좋아하고, 교회도 성장한다. 또 성공 신화 이야기를 써야 책도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이다. 역사와 사회적 현실에는 별 관심이 없다. 

설교가 끝나면 성도들은 "오늘 좋은 설교에 은혜 받았다"고 이구동성이며 고혈을 짜내 번 돈을 헌금한다. 그러면 목회자는 더 축복해서 헌금 더 많이 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억대 연봉을 받는다. 그것이 그들의 Job이다. 성도들은 그들의 헌금이 어떻게 쓰여지는지 아무런 관심이 없고, 문제 제기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문제 제기를 하면 본인만 왕따 당하는 분위기이다. 그래서 누구도 터치할 수 없기에 억대 연봉은 성역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혈을 짜낸 헌금을 한 성도들의 삶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그대로 있고, 축복 받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고, 부유한 사람들은 변한 것 없이 더 복을 받으려고 기도를 한다. 그들대로 계속 재산 모으기나 아파트, 땅 투기를 하며 억대 연봉 이상을 추구한다. 그러다가 투기라도 잘 되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더 열심히 신앙 생활을 잘하고 헌금도 잘한다. 그러기에 막스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설교와 종교를 아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목회자의 삶 바뀌지 않는 한 세상 바꿀 수 없어 

목회자의 삶이 바뀌지 않는 한 성도들의 삶이 바뀌지 않는다. 성도들의 삶이 바뀌지 않는 이상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목회자의 설교는 자신의 삶조차도 바꾸지 못하기 때문에 성도들의 삶을 바꿀 수없고, 성도들의 삶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교회가 바뀌지 않고, 교회가 바뀌지 않기 때문에 세상이 바뀌지 않는 것이다. 바뀌지 않는 교회에 대해서 오히려 세상이 바꾸라고 조언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광성교회 사건을 통해서 명약관화된 것이다. 기독교 자체를 망신시킨 사건이다. 그래서 친절한 금자씨의 말대로 세상은 '너나 잘하세요'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교회가 어둠이 되고 세상이 빛이 된 것이다. 세상의 개혁을 교회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억대 연봉자들은 자신의 물질적인 삶은 변화시키지만, 성도들의 심령은 변화시키지 못한다. 세례 요한, 예수, 바울의 설교는 흉내내지만, 그들의 삶의 능력은 흉내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세상으로부터 개혁을 요구받는 것이다. 

억대 연봉은 십자가보다 부활을 추구하고, 심령의 변화보다 물질적 변화에 관심하며, 고난보다는 성장을 목표로 하고, 희생보다는 영광을 위주로 하는 삶이다. 성도들 역시 목회자처럼 억대 연봉 축복받아 목회자처럼 물질적 축복을 추구하려는 습관이 있다. 가난한 목회자가 성공한 교회는 하나님이 은혜 주시면 나처럼 성공한다는 신화를 계속 설교하기 때문에, 성도들은 목회자처럼 복을 받으려고 집착하게 된다. 그 이면에 억대 연봉을 잠재적으로 추구하려는 무의식이 성도들에게 있는 것이다. 그것이 훌륭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목회자의 억대 연봉은 억대 연봉을 추구하는 성도들을 양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천만 원대 연봉이라 할지라도, 코미디나 에세이, 유머, 돈, 권력, 섹스, 경제, 간증, 예화 등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조금 재미 없어도 가난한 예수와 청빈한 사도들의 삶의 장인 성경의 내용을 실천하면서 설교한다면, 성도들은 목회자의 억대 연봉이 아니라 사심 없는 삶을 보고, 모든 것을 비운 '빈 신학'의 주창자인 그리스도께로 한 걸음씩 더 가까이 나아가, 그를 본받아 마음을 비우는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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